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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가장 좋은 물'을 공급한다는 홍익인간 정신 아래 한우물은 누구나 부담 없이 건강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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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물이 그냥 물?···아니, 그 자체로 명차입니다”
  • 작성자 한우물
  • 조회253회

김대성-이연자씨 부부 - 차&한우물과 함께 해온 삶의 이야기

기자생활 30년, 치열하게 현장 누벼
전국 방방곡곡 우리 명차 발굴 소개
‘물의 신비’ 기사 쓴 후 한우물과 인연
“한우물과 함께하며 삶이 달라졌어요”

차와 우리 문화에 대해 평생 공부하고 취재하고 연구를 이어온 김대성-이연자 씨 부부는 “30년 가까이 한우물과 함께 해오며 온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출처 = 격월간 ‘차인’ 2019년 11~12월호]
차와 우리 문화에 대해 평생 공부하고 취재하고 연구를 이어온 김대성-이연자 씨 부부는 “30년 가까이 한우물과 함께 해오며 온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출처 = 격월간 ‘차인’ 2019년 11~12월호]

[고양신문] “의성 허준이 어떤 물을 찻물로 써야 할지를 길잡이 해놓았다면, 강송식 씨는 차인들이 목마르게 찾는 똑 떨어지는 물을 만들어 놓았다. 강 씨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물은 처음부터 찻물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차인들이 더 탄성을 지르는 물을 만들어 놓은 셈이 됐다. 차와는 찰떡궁합이라는 것이 그의 정수기 물을 쓰고 있는 골수 차꾼들의 평이다. 결국 인체에 가장 좋은 물이 차를 끓이는 물로도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 김대성 저, 『차문화 유적 답사기』 中 

김대성씨가 강송식 한우물 대표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할 때였다. 1990년대 초반 ‘물의 신비’라는 기획기사를 연재하던 중 ‘이온수와 건강’이라는 주제의 ‘마시는 물은 약알카리수가 좋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강 대표가 직접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너무나 바빠 시간을 못 내겠다며 차일피일 만남을 미뤘다.

“당시 제가 물 관련 기획기사를 총 14회나 연재하며 전국의 전문가들, 카이스트 등 대학과 연구기관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다니며 취재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로부터 7~8개월 정도 지났을 때 강 대표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 로비에 와 있다며 오늘은 꼭 만나서 밥을 사야겠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제 기사 덕분에 한우물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죠. 그날 밥 대신 밤새도록 술만 엄청 퍼 마시며 시작된 인연이 벌써 거의 30년이 다 되어갑니다.(웃음)”

 

부부가 차와 전통문화 전문가 

김대성씨는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자마자 1968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중학생부터 꿈꿔왔던 기자가 돼 30년간 원 없이 취재현장을 누볐다. 국내에 변변한 차 문화라곤 없었던 1980년대 초·중반부터는 전국 방방곡곡을 발로 찾아다니며 ‘차 따라 차길 따라’ 등 100여 편에 가까운 기사를 통해 우리 차를 발굴해서 소개했다.  

전국에서 전화, 엽서, 편지가 쇄도하며 독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내친 김에 보이차의 원산지인 운남성 등 중국 현지 취재도 30회 이상을 다녀왔다. 그 연재물을 모아 『차문화 유적 답사기』를 펴냈고, 자연스레 (사)한국차인연합회 부설 한국차문화연구원 수석전문위원, 한국차학회 서울지회장 등을 맡으며 차 전문가로의 길도 이어왔다. 기자로 일하면서 『꽃이 있는 삶』, 『문화유산에 담긴 한국의 미소』 등 10권에 가까운 책을 써낼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사내 연애로 시작해 결혼에 골인한 그의 아내 이연자씨 역시 차문화, 차요리, 종가음식 등의 연구 작업과 전통문화 보급에 힘쓰며 『자연의 맛 우리 차 요리』, 『사계절 우리 차』, 『이연자의 우리 차 우리 꽃차』, 『천년의 삶으로 이어온 종가 이야기』, 『명문종가를 찾아서』, 『종가의 삶에는 지혜가 있다』 등 17권의 책을 펴낸 우리 차와 전통문화의 산증인이다. 

 『차문화 유적 답사기』

 

 『이연자의 우리 차 우리 꽃차』

 

 

한우물과의 인연으로 건강 지켜 
김대성 이연자씨 부부와 그들의 자녀들은 물론 친인척,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가 한우물 정수기의 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친다는 것이다. 특별한 질병 없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것 역시 한우물이 하다 더 가져다준 또 다른 공통점이라고 부부는 입을 모았다. 

 

“우리 몸의 약 70%는 물로 구성돼 있잖아요. 평소에 늘 의식적으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은 차의 몸이기도 해요. 차는 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죠. 아무리 좋은 차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물이 아니면 그 차의 좋은 맛을 절대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늘 한우물과 함께 할 수밖에 없게 되었죠. 그런 세월이 벌써 30년이 다 돼 가네요.”

거실 벽면 중앙에는 김대성씨의 조부가 직접 쓴 ‘산숭해심(山崇海深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이라는 글이 걸려있다.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 조선시대 천재 추사 김정희의 글을 조부가 자신만의 필체로 쓴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자신이 4~5세였을 때부터 늘 할아버지 곁에 앉아 함께 차를 마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거실 벽면 중앙에는 김대성씨의 조부가 직접 쓴 ‘산숭해심(山崇海深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이라는 글이 걸려있다.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 조선시대 천재 추사 김정희의 글을 조부가 자신만의 필체로 쓴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자신이 4~5세였을 때부터 늘 할아버지 곁에 앉아 함께 차를 마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오며가며 이야기를 듣던 둘째 딸 김미라씨가 “사실 전 아주 어릴 때부터 아무생각 없이 그냥 마셔왔는데, 피부가 안 좋았던 남편이 결혼 후부터 한우물을 먹더니 점점 피부가 깨끗해지는 걸 보면서 저도 깜짝 놀랐다”면서 “언제부턴가 밖에 나가서는 마실 물이 마땅치 않아 꼭 집에서 물을 받아서 나가게 되더라고요. 저도 어느새 부모님처럼 한우물 마니아가 돼버렸죠”라고 한마디 더 거들었다.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는 김미라씨는 『조선의 밥상머리 교육 : 500년 조선의 역사를 만든 위대한 교육』이라는 책도 썼다고 이연자씨는 옆에서 나지막이 귀띔했다.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보이차를 따라주는 김대성씨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보이차를 따라주는 김대성씨

강송식 한우물 대표는 삶의 은인
김대성씨는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강송식 한우물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품고 산다. 좋은 물 뿐 아니라 강 대표가 전해준 부항요법 덕분에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부항은 거의 모든 질환의 치료에 효과가 좋은 작은 종합병원’이라는 강 대표의 말처럼 김씨의 어린 손녀부터 자신까지 온 가족이 필요할 때마다 부항을 뜨며 건강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했다.  

“차에 대해 좀 아는 전문가라면 한우물로 우려낸 차를 한번 마시고 나면 다른 물은 절대 쓰질 못하게 됩니다. 저 역시 보성, 하동 등 명차 생산지에 수통을 들고 다니며 직접 길어온 물로 차를 우려 마셨죠. 하지만 한우물을 만나고 나서는 더 이상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돼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일부러 차를 우려 마실 필요도 없어요. 한우물 그 자체가 곧 차입니다. 그 어떤 차보다 나아요. 인생의 겨울에 접어든 저는 더 혹독한 추위가 오기 전에 여든 다섯 정도면 생을 마감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우물 때문에 그 소망(?)은 절대 이루기 어려울 거 같다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웃음)” 

팔순의 나이에도 늘 차를 마시며 건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김대성 선생.
팔순의 나이에도 늘 차를 마시며 건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김대성 선생.
거실 서재에는 부부가 평생 공부하고 연구해온 전통문화에 대한 책이 가득하다.
거실 서재에는 부부가 평생 공부하고 연구해온 전통문화에 대한 책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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